도와줄게. 도와주고 싶어. 네게 도움이 될 거 같아.
최근 많이 들었던 말. 분명 살면서 여러번 들어본 말인데 이 말이 귀에 자꾸 밟혔다.
잘나게 태어나질 않아서 노력할 게 많았다. 지금도 그렇다. 예전엔 남들보다 부족해서 그래서 더 노력하고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 싫었고 언제나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엔 다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점점 나아지고 발전하고 좋아지는 경험을 한다는 건 좋은 거니까 부족한 게 많다는 건 어찌보면 축복인 것 아닐까?
성취를 이루는 것 만큼 짜릿한 것은 없다. 시작부터 부족한 게 많으면 오히려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으니까. 레벨50일 때보다 레벨1일 때 레벨업하기 더 쉬운 것처럼. 그런데 생각해보면,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건 더 큰 축복이지 않나.
살다보면 도움이란 말을 어렵지 않게 접하지만 저마다가 말하는 도움이 다 같은 도움은 아닌 듯하다. 나에게 다가온 도움 또한 매번 같은 의미는 아니었다. 나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라고 말한 사람들은 어떤 뜻으로 이야기한 걸까. 이렇게 생각하면 ‘도움’이란 말의 참의미가 있지 않을까.
도움이란 말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떤 목적으로 사용해야 정말로 의미있을까. 이런 고민이 누군가에게는 불필요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최근 나 이외의 타인이란 존재를 좀 다르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가장 잘 쓰고 싶은 말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아마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말 만큼이나 타인에게 내 마음을 담아 건네는 말도 없기 때문일테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한 게 뭔지 잘 모를 때가 많은 것 같다. 사업에서 마치 고객을 다루는 것 같은 느낌. 당장 1초뒤, 1분뒤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 그래서 도움의 본질은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기분이 좋을 것 같은 방향을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게 정말로 필요한 건 대부분의 경우 내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자아성찰이, 메타인지가 중요한 이유… 무튼 그래서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들어봐야 한다. 십중팔구, 내가 보고 있지 못한 걸 보고 있거나 내 상황과 나를 다르게 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분명히 내게 도움이 될 이야기일테다. 판단은 결국 스스로의 몫이지만 상황을 다양하게 보는 것은 언제나 도움이 된다.
많은 관계에서 이런 태도를 잘 수용하지 못해 갈등이나 아쉬움이 생기는 것 같다. 넓게 보고, 큰 그릇을 갖는 게 어려운 이유이지 않을까. 그런데 만약 상대가 이런 상황에 있는 나를 이해해주고, 한발 물러서서 기다려준다면 그 사람은 일확천금일 확률이 높은 것 같다. 충분히 섭섭할 수 있지만 이런 감정을 감내하면서까지 나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내가 잘 되길 바란다는 반증이니까.
가까운 관계라면 조금 더 까다로워질테다. 필요한 부분도 채워줘야 하고 기분도 보살펴줘야 할테니까. 아마 그래서 가족이나 연인 같은 가까운 관계가 좀 더 어려운 것 같다. 상대방에 대한 책임이 따라오기도 하고. 마음이 큰 만큼 언제나 어려움도 크다. 그래서 관계에서는 언제나 더 많은 걸 보는 사람이, 더 감내할 게 많은 사람인 것 같다. 감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시야가 더 큰 만큼 심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받쳐줘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성숙함의 댓가나 미덕인걸까.
내게 진짜 진국인 사람은 기다려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내가 어디를 어떻게 돌고 돌아 헤매든 간에 기다려준다. 내게 필요한 것을 주려 한다. 내딴에는 그것이 당장 도움이 된다고 알아보지 못할지라도 나중에 깨달을지라도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준다. 흠이라면 상대가 나를 기다려주는 동안은 나는 이 미덕을 알아채기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는 점. 그래서 뒤돌아볼 때 나를 기다려준 사람이 있다면 그사람은 분명 고마운 사람이고 내 삶의 귀인인 셈이다.
등잔 밑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내 주변에 귀인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둘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