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적으로 힘겨웠던 한 주를 보내고, 자존감이 흔들리던 중 우연찮게 위로를 얻었던 글귀.
시란 쓰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밤과 낮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자명하게 존재한다. 어떤 영감도 아니며, 다만 광범위한 존재성일 따름이다.
사물이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다. 코코넛 야자나무나 날갯짓하는 천사같이 네가 기억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며, 너는 에덴동산의 아담처럼 단지 존재하는 것에 이름을 붙일 뿐이다. 그처럼 지극히 단순한 일이며, 다만 아주 많은 사물이 있는 것이다. 사물은 셀 수 없이 많고, 그 사물들은 앞면과 뒷면을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인생이 있다.
그 속에 모든 시가 들어있고, 모든 것이 시이며,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시인이 된다. 마법사 같은 그가 우연히 코코넛 야자나무를 생각하면 야자나무가 생겨나고, 야자나무는 바람에 나부끼다 회색빛 코코넛 열매를 흔든다. 있는 그대로를 취하라.
시인은 사물이 존재한다는 신성할 정도로 단순한 이유로 인해 인광을 발하며 작열하는 사물들을 가지고 유희를 한다. 사물들이 그의 내면에 있건 외부에 있건, 그건 마찬가지이다. 그에게는 아주 단순하고 당연한 일이다. 다만 한 가지 유일한 전제 조건은 그가 시라고 불리는 그 독특한 세계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 세계 밖으로 나오게 되면 모든 건 즉각 사라져 버리고 만다. 코코넛 야자나무도, 인광을 발하고 작열하는 사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또한 시인이 된다는 것도 나쁠게 없다. 시인은 자신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보며, 그것에 이름과 얼굴을 부여한다. 환상이란 없고, 자신 속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을 생각해 낼 수는 없다. 보고 듣는 것 속에 모든 기적과 계시가 들어 있다.
또한 우리 안에 그저 암시되어 있는 것을 끝까지 생각할 수가 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진동이나 순간처럼 보이는 것 속에서 인간 전체의 모습과 전 생애를 발견한다. 그의 내면에는 많은 것이 있어 세상으로 분출해 내야 한다.
<나가라, 로미오. 가서 정염의 사랑을 하라. 질투의 화신 오셀로, 살인을 하라. 그리고 너, 햄릿, 내가 그랬듯이 망설이거라.> 그 모든 것은 가능한 삶들이고 살아 볼 가치가 있으며 시인은 그 삶들을 기적과 전능함으로 충만하게 만들 수 있는 자다. (중략)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의 집합이다. 네가 누구든 나는 너를 알아본다. 우리 각자가 어떤 다른 가능성을 살기 때문에 우리는 똑같은 사람들이다. 네가 누구든 너는 나의 무수히 많은 자아이다. 네가 악인이든 선인이든, 그건 내 속에도 있는 거야. 내가 너를 미워하더라도 난 네가 나의 아주 가까운 사람이라는 걸 잊지 않는다.
나는 내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리라. 그의 멍에를 느끼고, 그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고, 그에게 닥친 부당함에 대해 함께 괴로워하리라. 내가 그와 가까워지면 질수록 나는 더 많은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이기주의자들을 배척할 것인데, 내가 이기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아픈 사람을 돌볼 것인데, 내가 병자이기 때문이다. 성당 문가에 서 있는 거지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인데, 내가 그와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만큼의 나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수록 나 자신의 삶은 더욱 완성되리라.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며, 가능성이기만 했던 것은 현실이 된다. 나를 제한하는 이 자아가 내가 아니면 아닐수록 나는 더 많은 존재가 된다.
이 자아는 도둑이 가지고 다니는 손전등처럼 그 불빛의 반경 안에 있던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너, 너, 그리고 너! 너희는 그렇게 많고, 우리는 그렇게 많아 교회 축일에 모인 사람들 같다. 다른 사람들이 있음으로써 이 세상은 얼마나 늘어나는가! 세상이 이렇게 커다란 공간이고, 이렇게 찬란한 곳인지 누가 알았으랴!
카렐 차페크, <평범한 인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