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을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팀장님께서 보내오신 250(이오공)의 영상이 시작이었다. 250은 음악 프로듀서로 이센스의 <비행>에서 시작해 f(x)와 ITZY, 현재 뉴진스까지 여러 히트곡을 만들어온 인물이다.
작년 3월 250의 앨범이 나왔는데 심상치 않다. 앨범의 제목은 <뽕>. 이름 그대로 뽕짝인데 이 앨범 낸다고 자그마치 7년 동안 뽕짝만 연구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뽕>은 세계적인 음악 평론 잡지인 <와이어>와 전자음악계 최고 권위 잡지인 <DJ맥>으로부터 극찬받았고, 해외에서 여러 곳에서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됐다. <뽕을 찾아서>는 그 여정의 기록이다.
<뽕>의 시작은 소속사 대표의 농담 섞인 제안이었다. 250은 대놓고 ‘뽕’이라고 하면 멋있는 척, 있는 척 없이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뽕이 무엇인가’라는 고민을 마주하게 됐다. 이후 전국 고속도로와 지역을 돌며 이해하려 했지만 3년간 단 한곡도 낼 수 없었다. 작업 초기 피하려고 했던 신바람 이박사를 끝끝내 찾아가게 되었다. 이후 김수일, 이정식, 오승원 등 뽕짝에 있어 거인들을 만나기 시작했고, 그들의 조력으로 <뽕>을 세상에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다큐를 정말 유심히 봤다. 5화밖에 없기도 하고, 녹화되고 편집된 영상에서 접할 수 있는 건 극히 일부분이지만 250이 어떤 과정을 통해 뽕을 이해하는지, 새로운 음악을 설계해내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도 250이 중간중간 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다큐 초반, 250은 소리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같은 고민을 하듯 키보드를 보러 다니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뽕짝 메들리를 사듣는다. 당시 뽕에 대한 250의 인상은 “소리(표현)에 대한 고민은 있는 것 같다”정도였다. 다큐 후반에는 “뽕짝의 멜로디는 그냥 나오는 법이 없다”며, 250은 인생에서 무언가 겹겹이 꼬이고 쌓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위안을 준다고 말한다. 말도 말이지만 250의 태도와 눈빛이 변한 게 선명하게 느껴졌다.
앨범이 출시된 후 250의 어느 인터뷰에 의하면, 뽕짝의 본질은 아이러니한 슬픔의 정서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이미 지나가버려 되돌이킬 수 없는 세월에 대한 허망함과 안타까움. 그래서 슬픔을 품에 안고 춤 출 수밖에 없다. 250은 자기 앨범을 두고 “옛날 음악 같지만 요즘 음악처럼 들렸으면 좋겠고, 슬픈 음악이지만 너무 슬프지 않았으면 했다”고 표현한다.
250의 여정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3가지로 압축되는 것 같다.
1/ 나만의 것을 해야 한다.
직접 들어본 <뽕>은 오묘한 느낌의 균형이 중요한 음악이었다. 작업 과정에서 250이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은 균형을 찾는 부분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뽕짝의 소스를 섞은 EDM의 음악이 나왔지만, 일부만 뽕짝스러운 것보다 몽환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곧 뽕짝의 멜로디를 직접 짜서 집어 넣었다. 이 시도를 통해 250은 자신의 오리지널리티를 만들 수 있었다고 본다.
“심심한 음식에 조미료 한 숟가락을 넣으면 모든 맛이 다 끌러내어지면서 어린 시절의 추억마저 되살려내는 경험을 했습니다. 하고 싶은 음악을 일단 만들어 놓은 다음, 은은한 슬픔을 전하기 위해 뽕의 요소를 넣었습니다.”
2/ 내 주관을 믿고 집요하게 집착해야 한다.
250이 <뽕>을 작업한 총 기간은 7년이었고, 이중 실제 앨범 작업은 4년이 걸렸다고 한다. 첫 3년은 맨땅에 헤딩했고, 이때 한곡도 내지 못해 방법을 바꿨다. 앨범을 작업한 4년 중에는 오승원을 수소문해 찾아다니는 데만 2년이 걸렸다. 오승원의 목소리가 아니고선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 쌓여야 비로소 드러난다.
아무런 베이스 없이 처음부터 나만의 것이 있을 수 없다. 내 거 하려면 내 주관과 관점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기본적인 것들부터 받쳐줘야 한다. 250이 말하는 뽕짝이 그렇다.
250: 뽕짝만이 나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그 무언가는… 어떤 멜로디가 그냥 나오는 법이 없다는 것? 뭔가 마치 이 안에서 뭔가부글부글 끓고 있고, 이 아래가 속이 너무 꼬여서, 뽕짝이라는 거는 어떻게 보면 재능이 필요하다 하면 재능이 필요한 거지만 마치 그 서편제의 한 장면처럼 인생을 살면서 어딘가 비틀어지고 꼬여있는 그 무언가가 있는 사람이… “어 쟤는 확실히 뭔가 할 줄 알아,” “쟤는 뭐 꺾을줄 안다” 라던지.
장유정 교수: 기교만의 문제는 분명히 아닌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뭔가 우러나와야 되는 게 있어야 되는 게 있어야 되는 거고.. “두핸데”라고 해서 이 두핸데는 뭐냐면 단순한 음악적인 기교가 아니라 그사람의 삶. 너무나 어렵고 힘들고 괴롭고 외로웠고 쓸쓸했던 그 삶이 목소리에 묻어날 때 그걸 두핸데라고 한데요. 그래서 우리나라도 똑같이 한이라고 하죠.
나만의 것 잘 하려면 내 주관이 쌓여야 하고, 내 주관은 기본 없이 쌓일 수 없다. 250도 그랬다. <뽕>은 250이 나이 마흔에 낸 첫번째 앨범이다. 아티스트로서는 늦은 데뷔일수도 있으나 그만큼 기본기와 250만의 관점과 주관이 쌓이고 숙성되었기 때문에 그만한 명반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결과물은 내가 할 수 있는 능력의 범주 안에서 나타나기 마련이다.
250의 음악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다. 마흔이지만, 7년이나 걸렸지만 <뽕>을 통해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했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대표님왈, 진정으로 의미있는 일이란 ”내가 없었더라면 이 세상에 있지 않았을 무언가를 하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250이 없었더라면 인류의 역사에서 뽕짝을 활용한 새로운 소리와 음악의 가능성을 제시한 인물은 없었을 거다. 250을 보며 인생은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