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에 합류하면서 처음 생긴 프로젝트의 DRI를 맡았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Helper’로, 현장과 오피스의 가교 역할을 하며 양쪽을 동시에 돕는다는 의미에서 헬퍼다. 프로젝트의 발단은 오피스가 현장에 새로운 기능과 업무를 더 잘 안착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오피스가 현장에 새로운 무언가를 도입할 때, 현장이 오피스에 무언가를 요청할 때 모두 나를 통하게 되었다. 그리고 양측의 정보전달을 원활히 만드는 역할을 맡았다.
나 또한 우리 사업과 현장에 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는 기대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다. 무언가를 처리할 때면 사람과 의사소통하고, 사람을 설득하고, 사람을 레버리지하는 과정이 반드시 동반됐다. 돌이켜보면 현장도 현장이지만, 사람에 관해 많이 배우는 시간이었다.
결국 오프라인 현장도 사람에 의해 돌아간다. 사람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 현장의 특징 몇가지.
현장은 하나의 독립적인 생태계다. 사람이 구성하는 오프라인 생산 현장은 더더욱 그렇다. 현장의 사람들은 주로 물리적인 노동을 한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고되다. 하지만 현장일은 단순히 힘들고 말고를 떠나 사무업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배경, 역량, 사고방식을 요구한다. 즉, 두 공간에 모이는 사람들은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람이 모인 곳에는 어디든 문화가 생겨난다. 현장도 그렇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의사소통한다. 각자의 방식대로 타인과 어울린다. 개인의 방식은 다른 개인의 것과 얽히며 새로운 합의된 방식을 찾아나간다. 그렇게 공장 작업자들이 모인 현장과 요리사들이 모인 현장, 사서들이 모인 현장은 모두 다른 문화를 이루어 낸다.
우선, 현장에는 현장만의 언어가 있다. 현장과 적절하게 의사소통하기 위해선 현장의 언어와 맥락을 알아야 한다. 개개인이 사용하는 용어와 표현은 언뜻 보편적인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각자가 속한 맥락에서만 그럴 뿐이다. 산업, 직무, 지리 등 기존에서 맥락을 조금이라도 언어는 바뀐다. 오피스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표현은 오피스에서만 통용되고,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거나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래서 현장과 커뮤니케이션할 때 맥락에 관한 얼라인을 먼저 맞춰야 한다.
현장에는 현장만의 방식이 있다. 오피스에선 늘 업무가 어떤 방식으로 처리되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상상하고 그대로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그것이 현장에서 늘 반영되는 건 쉽지 않다. 현장의 업무와 기능은 반드시 기존의 설계 의도와 다르게 변질된다. 물리적인 제약조건이 있고, 사람은 인지능력의 한계를 가지며, 상황은 실시간으로 급변하기 때문이다. 늘 같은 결과를 타깃하더라도 우선순위와 방법, 행동은 불규칙적으로 쉽게 변화할 수밖에 없다. 현장 나름의 방식대로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맞춰 끊임없이 최적화하는 셈이다.
현장과 협업할 때는 현장의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현장과 협업할 수 없고, 현장의 문제를 제대로 정의할 수 없고, 나아가 현장을 레버리지할 수 없다. 현장을 다루는 일도 결국엔 사람을 다루는 일에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