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러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신체가 있고, 생각이 있고, 가치관이 있고, 감정도 있다. 모든 게 나다. 이중 내가 아닌 것은 없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소유한 무언가라고 부른다. 내 몸, 내 가치관, 내 감정 등…
어쩌면 이들 사이에 우선순위나 위계가 있을 순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나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호기심이 든다. 가끔, 아주 가끔은 내 감정과 생각과 몸이 맞지 않기 때문에. 특히나 최근에는 내 이성과 감정이 서로 충돌하는 것을 인지하면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진짜 나는 뭐지? 사실 생각해보면 이성과 감정 뿐만 아니라 가치관이나 기분 혹은 그외 다른 것들 간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는 꽤 많다. 나를 이루는 것들이 서로 충돌하고 어긋날 때 나는 어떤 것을 믿고,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을 하면 좋은 걸까.
고민 끝에 내가 내렸던 결론은 내 감정이 ’가장 날 것의 나‘라는 것이었다. 우린 외부로부터 여러가지 자극을 끊임없이 받는다. 이 자극은 감각 혹은 느낌이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받아들여진다. 그럼 아웃풋으로 나오는 게 감정이다.
그래서 감정은 그 자체로 공리다. 생각은 뒤따라오는 행위다. 생각의 사전적 의미는 '무언가를 헤아리고 인식하고 판단하는 작용'이다. 생각은 언제나 사후적이다. 앞서 행위의 객체가 되는 이벤트가 있어야 생각은 피어날 수 있다. 생각은 늘 한발 늦는 친구다. 대신 늦는 만큼 신중하기 때문에 우리가 무언가를 판단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판단이 가능해지면 분별할 수 있게 되고, 크고 작은 여러 판단이 쌓이면서 비로소 나만의 가치관이 형성된다.
내가 무언가를 직접 보고, 듣고, 만질 때 즉 경험할 때 그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경험하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 나는 어떠한지 등을 느낀다. 감정은 이 상호작용 속에서 피어난다. 기뻤는지, 슬펐는지, 아쉬웠는지 혹은 다른 무언가였는지. 이런 기분, 감정이 일어날 때 다음이 생겨난다. 나는 왜 그런 기분을 느꼈지? 그렇게 생각이 피어나고 행동이 이어지고 원칙으로 굳혀진다.
롭 무어는 <결단>에서 말했다.
“큰 결정은 마음으로 하되, 작은 결정은 머리로 하라.”